‘성불’은 눈부시게 빛나는 ‘신과 같은 존재’
그러한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긴 여정을 떠나는 것도 아니다.
성불이란 생명 오저의 근본적 변화를 말한다.
머나먼 미래에 언젠가 깨달음의 정상에 오르기 위한 실천이 아니다.
‘불성을 나타낼 것인가?’ 아니면 ‘근원적 번뇌와 미혹에 지배될 것인가?’
성불은 끊임없는 순간순간의 내적 투쟁이다.
자신의 생명을 닦는 이 끊임없는 노력이 바로 불도수행의 핵심이고 본질이다.
성불
불법은 현실과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현실 속에 존재한다.
불법은 인간의 고뇌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이 고통과 고뇌의 세계를 희망의 세계로 전환하게 해준다.
불법은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이곳에 있다.
성불
‘만물은 무상(無常)하여, 끊임없는 변화의 연속이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불법의 가르침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불법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끝없이 변화하는 현실의 한 가운데,
현실의 진흙탕 속에서, 최고의 희망과 충실감을 찾고자 한다.
우리 사회와 환경을 평화와 번영의 방향으로 이끌고자 한다.
성불
불법과 이전의 다른 사상 종교와의 극명한 차이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생명 속에서 ‘법’
즉 무한한 내면의 힘을 발견한 일이다.
그리고 그 힘은 가장 근본적 차원에서 모든 고통을 해결해준다.
불법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최고의 인간주의 철학이다.
성불
‘누군가가 아프다. 누군가는 경제적으로 힘들다.
어서 가서 이 사람들을 격려하자.’라고 생각하며
기원해주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행동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불법자의 행동이다.
성불
석존은 일생 동안 낭랑한 목소리로 사람들을 격려했다.
어느 경전에는 석존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환대하며,
그들을 만나 얼마나 기뻐했는지 씌어있다.
석존은 누구를 만나더라도 애정과 기쁨 그리고 온화함을 드러냈다.
상대가 편안하게 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어색함을 없애기 위해 먼저 말을 걸었다.
석존의 이러한 능변과 성실함 덕분에,
불법은 당시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폭넓게 수용될 수 있었다.
성불
목적과 가치 없이 살아가는 인생,
자신의 존재 이유도 모르는 인생에는 기쁨도 활력도 없다.
확고한 목적관 없이 그냥 먹고, 살고 죽는 것은 축생계의 삶이다.
반면 타인과 사회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창조하고 공헌한다.
그렇게 도전하고 헌신하며 살아간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만족스러운 인생이고, 가치 있는 인생이다.
정말로 인간적이고 숭고한 삶의 방식이다.
성불
‘성불한다’는 것은 어떤 ‘목적지’
혹은 특별한 ‘상태’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길’ ‘궤도’를 의미한다.
이 궤도에서 확고한 자신을 구축하는 것이 성불이다.
나와 타인의 행복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우리의 생명에 확고히 하는 일이다.
그러한 정신으로 건설적 행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성불
불법은 모든 색깔, 모든 향, 새, 동물, 사람, 꽃,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와 같은 모든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우주에서 일어나는 다채롭고 아름다운 모든 현상이
예외 없이 불성(佛性)의 현현(顯現)이라고 말한다.
성불
사람이 비관에 빠지면,
기쁨과 희망을 가로막는 어둠의 구름 뒤로 숨고 만다.
반대로 불법은 절망을 찾아볼 수 없는 최고의 낙관주의를 가르친다.
무한한 행복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무한한 희망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