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본래 강하고 현명하며 명랑하고 따뜻하다.
종교적 믿음은 이러한 품성을 발달시키는 힘이다.
신앙의 목적은 인간을 현명하게 만드는 데 있다.
종교와 신앙
‘종교가 인간을 강하게 하는가 약하게 하는가,
선하게 하는가 악하게 하는가, 현명하게 하는가 어리석게 하는가?’
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에 던져야 할 질문이다.
종교와 신앙
21세기 종교는 사람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그리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스스로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혜를 선사해야만 한다.
종교와 신앙
종교는 그 쓰임에 따라 파괴적인 힘이 될 수 있다.
인간을 화합시켜야 할 종교가 오히려 종교를 악용하는 자들에 의해
분열과 대립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보다 더 안타까운 일은 없다.
종교는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종교를 위해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21세기 종교의 근본적인 지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종교와 신앙
법화경은 종교의 비인간화와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종교의 경향성에 저항해야 한다고,
그리고 종교의 주요 초점을 인간으로 확고히 되돌려야 한다고 가르친다.
종교가 인간으로부터 멀어질 때,
종교는 단지 인간을 조종하는 수단에 그치고 만다.
종교와 신앙
불법은 사회와 동떨어져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 속에서 나타난다.
사회 속에서 불법의 지혜를 역동적으로 적용해야만 한다.
세상과 격리되어 종교의 세계에 갇혀있는 종교는 이미 죽은 종교다.
종교와 신앙
지금 가장 서둘러야 할 일은 현대 과학이 이루어낸 관점을 포함하여
인간과 사회의 모든 측면을 아우르는 신앙과 이성의 새로운 결합이다.
신념 없는 이성과 비이성적 광신주의에 의해 뿔뿔이 해체된 인간사회 전체를 복권하기 위해,
현대 문명이 맞닥뜨린 가장 큰 어려움이다.
종교와 신앙
불법의 중심에는 인간이 있다.
마음의 중요성과 생명의 소중함에 초점을 맞춘 불법은
모든 사람들에게 내재된 불성을 일으켜 나타낼 수 있도록 한다.
종교와 신앙
지혜는 자신의 삶은 물론 타인의 삶까지도 향상시킬 수 있게 해주는 깨우침이자 통찰력이다.
남에게 괴로움을 유발하는 지식은 결코 지혜라 할 수 없다.
오늘날의 비뚤어진 사회는 ‘전체인 지혜’를 ‘단편적인 지식’과 혼동하는 데서 기인한다.
또한 진실한 신앙심과 맹목적 믿음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와 신앙
불법은 가까이에 있다.
지금 여기에 일상생활 속에 존재한다.
인간 존재의 내면에 그리고 사회 속에 자리하고 있다.
불법을 인생과 현실에서 멀리 떨어진 세계에 있는 것처럼 보여주는 행위는 기만이다.